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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10월10일수요일
“나는행복한학생입니다”
지난3월,유난히설레보이는학생이눈에띄었다.그는바로1975년국가에의해학업이
중단됐다가이번해에재입학한이동석(서양어·프랑스어73)씨이다.이동석씨는“당시엔
피치못할사정으로학업을중단했지만삶의해답을찾기위해다시학교로돌아왔어요”라
고말했다.아픈기억은접어두고행복했던청춘을되찾으러돌아온이동석씨를만나봤다
Q1.학교에돌아오시게돼감회가새로우
1980년저는석방됐고다음해에일본으로돌아갔어요.
이궁금해헌책방에가일본어로된‘욕망’책을하나사읽
도쿄에2살된손자가있어요.손자가학교에입학하기전
실것같습니다.혹시기억에남는일화가
복학하고싶은마음은굴뚝같았지만간첩으로낙인찍혔
어봤더니마음에쏙들었어요.그길로연극회에지원하게
까지대학을졸업하고싶어요.처음에는2년안에졸업할
있으신가요?
수있을것이라고생각했어요.그런데지난학기에17학
기에학교로돌아갈수없었어요.그렇게일본에서살아가
됐어요.오디션을보는데노래를하나부르라고했어요.
점을들어보니생각보다쉽지않더라고요.그래서이번학
그래서몇알지못하는우리나라노래가운데‘봉선화’를
다노무현정권때간첩죄에관련해재심을할수있는기
지난1학기프랑스어전공시간이었어요.제가73학번이
기엔교양과목을들으며15학점을듣기로했어요.관심이
불렀지요.사실제가아주음치예요.노래를부르고얼굴
회가생겼어요.처음엔어차피일본에서사는데재심이무
다보니제일먼저출석이불렸지요.교수님께서저를보
있는것을배우는것이좋을것같아‘한국문학’과‘한국
슨소용이있을까생각하기도했어요.하지만재일교포가
이빨개져“음치에게노래를부르라고하는것은실례예
시더니‘왜여기에계시죠?’라는듯한눈빛을보내셨어
현대사’과목을골랐어요.또비교적으로배우기쉬운일
운데박정희정권부터노태우정권까지우리나라에서구
요!”라고외쳤어요.당시에면접을본선배들이좋게봐주
요.그래서프랑스어로“저는학생입니다”라고대답했어
본문학관련수업을선택했는데상당히수준이높아힘이
셨는지연극회에합격했어요.연극회친구들과매일오후
속된사람은100명이넘었어요.그사람들과이문제를해
요.교수님께선경칭생략으로출석을부르시겠다고하시
드네요(웃음).그래서다음학기엔10학점이하로신청할
5시쯤부터2,3시간연습을하고함께뒤풀이를하며친해
결해야겠다고생각했어요.이후이들과모여2011년에재
곤제이름을부르실땐“이동석선생님”이라고부르셨어
예정이에요.졸업하는데3년이걸리면어떻고,4년이걸
졌어요.그때는재일교포에대한인식이좋지않았어요.
심을신청했고2015년9월에무죄를선고받았어요.무죄
요.수업이끝나고교수님께다른학생들과똑같이불러달
리면어때요.저는우리나라에서생활하고학교를다니는
벼락부자가된사람들이라는인식이있어돈을낭비하고
선고도받았고나라로부터보상도받았지만가슴에맺힌
라고부탁드렸는데“네,알겠습니다선생님”이라고답하
삶이즐거워요.당분간은천천히학교를다니며지금을즐
나쁜짓을일삼는다고생각했어요.하지만연극회부원들
한이풀리지않았어요.국가가보상금을준다는것은과거
셨어요(웃음).나이가더많은사람의이름을부르는것이
기고싶어요.졸업을한후엔사회적으로도움이되는일
은그런편견이없었어요.학교를떠나기전까지함께여
로돌아갈순없으니국가의잘못을돈으로계산한것으로
실례라고생각하신것같아요.이런부분에서배려해주시
을하고싶어요.제가일본에서지낼때사회복지관련일
행도가고매우즐겁게지냈어요.행복한추억이많아요.
밖에생각되지않았어요.이한을어떻게풀면좋을지고
는게저로서는참감사해요.
을했어요.그경험을바탕으로우리나라에서도일해보고
민하던중‘학교에복학하는게어떨까?’라는생각이들
싶어요.앞으로학교를다니며더생각해볼예정이에요.
Q4.어쩌다한국에서대학을다니게됐나
었어요.그렇게학교에재입학을문의했고가능하다는대
Q2. 학교를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요?
답을들었어요.그때의행복을잊을수없어요.이후학교
Q6.후배들에게좋은말씀부탁드립니다.
그상황이어땠나요?
에복학했죠.
고등학교3학년재학시절,학교에북한계조선학교견학
사실이나이에다시어학을배운다는것이쉬운일은아
일본고등학교를졸업한후한국어를배우기위해우리나
요즘학생들은예전에비해학생들끼리돕거나재밌게지
포스터가붙은것을봤어요.부모님께는비밀로하고견학
니에요.40년이상공부를하지않았기에학교에돌아오
라로들어왔어요.당시우리나라는긴급조치,계엄령등
내는분위기가없어진것같아요.사회적구조와분위기가
을갔어요.그러던중다른이들과는다르게일본학교를
기전에프랑스로6개월정도유학도다녀왔어요.아직도
정세가불안했어요.하지만우리나라에서공부하겠다는
변화했기때문이겠죠.하지만학생들이많은호기심을갖
다니며한국이름을사용하던재일교포학생을만났어요.
어렵긴하지만가족들의열렬한지지에홀가분한마음으
의지로‘서울대부속재외국민연구소’에다녔어요.그다
고,여러방면에서경험을했으면좋겠어요.
당시대부분의재일교포학생들은일본이름을사용하며
로학교에돌아올수있어매우감사해요.
젊었을때실패하는것은실패한게아니에요.저또한피
음해인1973년,우리학교프랑스어학과에진학했어요.
일본인인척했어요,그학생과대화를나누며가치관이많
치못할사정으로5년간공백이있었지만그것으로제인
하지만행복한학교생활을하던중1975년에학교를그만
이바뀌었어요.이후우리나라역사를배우고우리나라에
생이실패했다고볼순없어요.그일덕분에느낀것도많
Q3. 43년전엔 어떤 학교생활을 하셨나
둘수밖에없었어요.왜냐하면그해11월22일박정희정
고얻은것도많아요.인생을길게생각하면실패한것또
대해공부하다보니한국어를공부하고싶었지요.그것이
요?
권에의해‘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사건’이발생했기때문
한경험이고경험을살리려고노력하면돼요.그러다보면
바로나의정체성을찾는길이라고생각했어요.
이죠.저는하숙집에쳐들어온보안사에의해연행돼갖가
인생을어떻게살것인지에대한해답을얻을수있어요.
학교생활의대부분을연극회에서보냈어요.원래연극에
지고문을당했어요.결국1976년12월저는대법원에서
학생들이원하는삶을살았으면해요.
Q5.앞으로의목표가어떻게되세요?
국가보안법·반공법위반과간첩죄로징역5년을선고받
관심이있었는데마침그때연극회가‘욕망’이라는연극
았어요.
오디션을진행한다고했어요.‘욕망’이라는소설의내용
윤아영기자97yyuna0@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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