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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ulture
동사회를 그리는 <미생>에서 읽어내야 할 첫 번째 포인트다.
우리 시대의 일터는 ‘의미’와의 결속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공동체’
김수환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20수) <미생>의 세계관은 ‘하
의 위상도 잃어버렸다. 우리 삶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
한국외대 러시아학과 교수
찮고 평범한 것 속에 깃든 진실’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일상 미
도 과언이 아닌 노동의 시공간은 이제 다만 견뎌야 할 삶의 무게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학술원) 문학박사
학의 분명한 계보를 잇고 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진정한 삶이 체험
거나, 혹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일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역서: <책에 따라 살기>, <사유하는 구조>,
되는 시공간은 거대한 외적 변화의 상황이 아니다. 극적인 위기의
이렇게 되자 노동의 시공간으로부터 또 한 가지 중요한 본질이 빠
<기호계> 등
순간, 커다란 이야기가 벌어지는 장소는 오히려 윤리적 선택에서 개
져버렸다. 바로 ‘성장’의 가능성이다. 노동은 더 이상 의미와 공동체
인의 책임을 말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일상 속의 사소하고
의 장소가 되지 못하고, 그래서 성장 역시 불가능해졌다. 노동(일)
평범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들에서 비로소 ‘책임의 주체’로서 등장
이 다만 밥벌이로 전락하는 동안, 그것이 채우지 못한 빈자리는 맹
한다. 인간은 ‘구조’속에서 뿐 아니라 ‘일상’속에서 발견되어야만 하
렬하게 다른 것들로 메워져 갔다. 교육과 훈련을 위로와 힐링이 대
며, 그 일상이라는 것이 “바둑판 위에서 의미 없는 돌은 없다.”(33
체하고, 협력과 성장을 달콤한 공감과 고독한 내면탐구가 대신한
수) <미생>이 전하는 두 번째 포인트다.
다. 그러니까 몸을 소진시키는 ‘과로사회’의 반대편에는 마음이 고
“잠깐, 아까 바둑은 1대1 싸움인데, 사회는 그렇지 않다고 했지? 당
픈 ‘허기사회’가 있다.
연하지! 우리 회사는 팀제니까. 우린 하나로 묶여지는 거야. 혼자가
해답이 아닌 질문, 교본이 아닌 사례집에 해당하는 텍스트 <미생>
아냐.”(47수) <미생>은 바둑 실력 말고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한
을 둘러싼 관심과 논의는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해명’하는 것에서
청년이 종합상사의 화이트컬러 노동 세계를 배우는 이야기다. 하지
종결될 수 없다. 그 의미는 그것을 낳은 사회 자체에 대한 ‘질문’으
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듯이, 그것은 고졸 학력이 전부인 한 젊은이
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만일 <미생>에서 모종의 새로움이 발견될 수
가 명실상부한 ‘팀’의 일원으로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있다면, 그 새로움은 그 뒤에 도사린 우리 시대 자체의 ‘곤궁’을 재
다른 이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 팀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함께 만
사유하기 위한 계기가 되어야만 할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화제작
들어가는 경험은 (혼자 싸우는) 바둑세계가 가르쳐주지 않은 새로
<미생>을 ‘우리 시대의 (공공적) 텍스트’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
‘사회적 텍스트’로서의
운 체험이다. 팀이라고 표현되는 공동체의 문제. 오차장과 장그래의
식이다.
도전과 실패로 이루어진 서사의 외적 틀을 채우고 있는 내부의 진
* 이 글은 필자의 논문 「웹툰 <미생>이 말하는 것과
미생
짜 이야기, <미생>의 진정한 서사적 핵심에 해당하는 그것은 다름
말할 수 있는 것들: 우리 시대의 노동, 공동체 그리고 성장」
(『안과 밖』, 2013)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아닌 ‘공동체’의 문제다. 회사라 불리는 일상적 노동의 공간 안에서,
그 삭막한 전쟁터에서 과연 공동체는 가능할까? <미생>이 제기하
는 세 번째 포인트다.
웹툰 연재 당시에도, 그리고 드라마 방영 이후에는 훨씬 더 많이 듣
게 되는 전형적인 반응이 있다. 장그래가 속한 ‘영업 3팀’이야말로
판타지의 절정이라는 것, 오차장 같은 팀장, 김대리 같은 사수는 결
웹툰 화제작 <미생>이 올 하반기에 드라마로 제작되어 또 한 번 대
한 판단은 텍스트의 ‘바깥’을 보는 관점과 분리될 수 없다.
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과 허구를 구분할 줄 아는
중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만화를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
“나는 왜 일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일일 뿐인데.”(138수) 일을 하지
이런 냉철한 반응 앞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에서 스토리 및 캐릭터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고 물론 이에 대한
않아서가 아니라 일에 너무 진지하게 임한 나머지 조직 내에서 곤
‘두 겹의 시선’이다. 여하한 대중문화는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평가는 저마다 다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를 통해 <미생>이라는 작
경에 처하게 된 오차장이 작품 말미에 읊조리는 대사다. 분명히 말
언제나 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념과 무의식을 ‘투영’하기
품이 ‘우리 시대의 (문제적) 텍스트’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데에
하건대, 여기서 방점은 오차장의 ‘실패’가 아니라 일에 의미를 부여
마련이다. 사회적 의미를 갖는 모든 대중문화는 바로 그 점에서 ‘징
는 이견을 갖기 어렵다.
하려는 그의 ‘의지’에 찍혀 있다. 윤태호가 그리는 세계는 한 일중독
후’이자 ‘단서’가 된다. <미생>의 이야기에 울고 웃는 대중의 반응
어떤 작품이 ‘시대의 텍스트’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아마
자의 실패가 아니라 어떻게든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려
을, 달콤한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봉합해버리는 이데올로기
도 그건 그 작품을 만든 시대의 사회적 현실 뿐 아니라 그 속에서
했던 의지의 분투를 향해 있다. 요컨대, 그것이 묻고 있는 질문은
의 희생물로 파악하는 대신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다른’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의 정념과 무의식이 해당 텍스트를 통해 ‘응축’되어
‘당신은 왜 일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원하고 꿈꾸는 대중의 깊은 ‘열망’으로 바꿔 읽을 수 있을 때, 그럴
표현되었다는 점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 경우 해당 텍스트에
하고 있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채 당신은 과연 제대로 살 수
때에야 비로소 <미생>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텍스트’로 한 걸음 나
대한 탐색은 사회에 대한 성찰과 다르지 않으며, 텍스트 ‘안쪽’에 대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일이 전부인 우리 시대의 삶’, 출구 없는 노
아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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