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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번역은 과연 어떨까? 이왕 네루 수상이 영어를 집에 빗대어 말했으니 번역도 집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번역은 가히 세계화의 시대, 지구촌 시대에 세계화의 광장에 나
서는 문이라고 할 만하다. 번역이라는 문을 나서지 않고서는 세계화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다. 만약
번역이 없다면 우리는 국수주의라는 집안에 갇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어라
는 창문을 통하여 세계를 조망하듯이 번역이라는 문을 통하여 우리는 시대정신을 호흡하고 세계와
나란히 발을 맞출 수 있다. 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번역은 무엇보다도 중요
하다.
오역 없이 술술 읽혀야 좋은 번역
번역이 이렇게 세계화 시대에 무엇보다도 자못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번역이나 좋다
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올바르지 못한 번역은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한길에 놓인 바위
덩어리처럼 걸림돌이 된다.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언제나 “글에는 오직 두 가지 글, 좋
은 글과 나쁜 글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번역에도 잘 들어맞는다. 실제로 번
역에도 ‘좋은 번역’과 ‘나쁜 번역’이 있다. 오역(誤譯)이나 졸역(拙譯)은 후자에 속한다. 또 번역 텍스
트를 읽으면서 원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일단 그 번역은 실패다. 심지어 번역은 역시 “번
역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번역가들도 있다. 다시 말해서 번역투로 서툴게 번역해서 누가 보더라도
외국 문헌을 번역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좋은 번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번역’이란
어디까지나 원문에 대한 생각을 잊게 해주는 번역이다. 모국어의 저자가 쓴 글처럼 술술 읽히는 번역
이 좋은 번역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실제로 오역의 실례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청록파
시인 중의 한 사람인 조지훈(趙芝薰)이 쓴 「고사(古寺)」라는 작품 첫머리에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 졸음에 겨워 // 고오운 상좌 아이도 / 잠이 들었다’라는 구절에 나온다. 그런데 미국의 저명한 한국
학 학자가 이 구절을 “Overcome by a stealthy slumber, / A blue boy in the upper seat. // With
the wooden fish in his hands, / Closes his eyes and nods.”로 번역하였다. ‘상좌(上佐)’란 불교
에서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중에서 가장 높은 승려를 가리킨다. 이 시에서 ‘상좌’는 고려
가요의 「 쌍화점(雙花店)」에서 “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 / 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에서 바로 그 ‘새끼 상좌’와 같은 말이다. 즉 주지 스님 옆에서 시중을 드는 동
자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 번역가는 상좌를 ‘높은 자리로’로 잘못 이해하여 ‘upper seat’
로 옮긴 것이 아닌가!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이문열(李文烈)의 「시인」에는 한 작중인물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한
국 속담을 인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영국 태생의 한 번역가가 이 문장을 “A horse with no
legs goes a thousand leagues.”로 번역하였다. 여기에서 ‘말’은 짐승인 말[馬]이 아니라 인간의 말[言]
이다. 인간의 언어는 짐승처럼 발이 없지만 어떤 짐승보다도 빨리 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좋지 않
은 소문이 쉽게 퍼지는 것을 두고 이르는 속담이다. ‘말’이라는 어휘의 다의적(多義的) 의미를 헤아릴
줄 아는 사람만이 이 구절을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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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외대77호 내지.indd 21
2012-10-24 오후 6: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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